Monday, May 5th, 2025

경매 역사 다시 쓴 김환기의 걸작 ‘우주’, 132억 원에 낙찰…신원 미상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홍콩 완차이에 위치한 홍콩컨벤션센터 3층 그랜드홀.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로 긴장감이 감돌던 그곳에서 한국 현대미술 경매 사상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 펼쳐졌다. 세계적인 경매사 크리스티 홍콩이 주최한 ‘20세기와 동시대 미술 경매’에서 김환기의 작품 <우주>가 출품되자, 현장의 모든 시선이 이 한 점에 집중됐다.

경매는 4,000만 홍콩달러(약 60억 원)부터 시작됐다. 순식간에 응찰가가 8,000만 달러를 넘어서며, 한국 미술계의 상징적인 가격인 100억 원의 벽을 돌파했다. 응찰은 치열했고, 8,100만, 8,200만, 8,400만 달러까지 이어졌다. 크리스티 한국 대표인 이학준 씨는 한 교민의 전화를 대신 받아 8,500만 달러(약 130억 원)를 불렀다. 현장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다.

마침내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 프랜시스 벨린이 “에이티에이트!”라고 외치며 8,800만 달러(한화 약 132억 원)의 응찰가를 제시했다. 경매사는 “9000만에 도전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지만, 이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최종 낙찰자는 프랜시스 벨린이 대리한 익명의 응찰자로 결정되었고, 한국 미술품 최초로 경매가가 100억 원을 넘어서는 역사적인 순간이 완성됐다. 수수료를 포함하면 총 낙찰가는 약 150억 원에 이른다.

보통의 경매가 1~2분 만에 끝나는 것과 달리, <우주>의 경합은 10분 이상 이어졌다. 시작가에서 수십억 원이 뛰는 가격 경쟁에 현장은 숨막히는 긴장 속으로 빠져들었다.

김환기는 한국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뉴욕 작업실에서 푸른 점을 중심으로 한 추상화를 집중적으로 제작하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확립했다. <우주>는 전라도 신안 섬들의 바다와 밤하늘에서 영감을 받아 표현한 작품으로, 점과 선이 어우러져 광활한 우주의 깊이를 담아낸다.

<우주>는 그의 작품 중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하는 유일한 두 폭짜리 그림이다. 이 작품은 피난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던 재미교포 의사 김마태 씨와 그의 아내 전재금 씨가 작가에게서 직접 구매해 40년 넘게 소장했다. 이후 국내 화랑 시장에 약 80억~90억 원대로 출품됐으나 거래되지 않아, 크리스티의 권유로 경매에 나오게 된 것이다.

작품은 점묘기법과 짙은 푸른색의 조화로 시각적 울림을 주며,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상징하는 대표작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 인물로 자리매김했고, 미술계는 그의 작품에 담긴 시대정신과 미학적 가치를 다시금 주목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이 작품을 낙찰받은 익명의 인물은 누구일까? 개인 컬렉터인지, 혹은 기관의 대리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그날 밤 홍콩의 경매장이 한국 미술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사실이다.